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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발걸음 닿은 곳

남해 여행 추천지 파독전시관

by 밝은생각쟁이 2016.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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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의 주제는 휴양. 쉼. 힐링. 이다...

무리하게 일정을 잡지 않았고,

마침 비도 와서 더 쉬엄쉬엄  다녔고,

또 마침, 일도 많아서, 조금 더 쉬엄쉬엄 있을 수 있었다...

 

사실, 독일마을에 대해 찾아봤을 때 파독전시관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는데,

박물관, 혹은 전시관을 못 지나치는 습성으로 인해, 발걸음이 머물렀다.

 

월요일에 첫 방문... 파독전시관 앞에 있는 원예마을과 함께 휴관이다.

 

그리고, 또 다시 올지 안올지...(화요일의 계획은 없었으니까?) 몰랐지만,

화요일에 또 왔다. !

 

사실, 일하기 위해, 독일마을에 있는 카페에 왔지만.. 겸사겸사 파독전시관에 들르게 되었다.

 

파독전시관을 돌아보며, 꼭 포스팅 해야겠다고 느꼈고,

이제는,

독일마을에 온다면 꼭 들러야할 곳 !
파독전시관 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화요일..

나름 운치 있었다.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 간호사의 노후를 위해 조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독 전시관은, 이름으로부터 알겠지만, 그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파독 광부, 간호사의 이야기는 황정민이 출연했던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방문한 파독전시관을 통해 조금더 현실감 있게 알 수 있었다.

전시관 입장료는 1000원이고, 돌아가면서 파독 광부 혹은 간호사셨던 어르신들께 도센트를 요청할 수도 있다.

 

전시관 앞에는 다음 문구가 있다.

 

1960~70년대 희망을 찾아 독일로 떠났던

힘겨웠던 독일 생활 속에서 삶과 희망을 만납니다.

 

뭔가 1960년대로 떠나는 통로와 같다.

 

현재로부터 1960년대까지의 한국의 경제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생필품 원조에 의존했던 한국 경제는 국민소득 76달러(약 91,200원), 실업률 30%로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말...

 

이 말에, 직업교육을 공부하는 나에게 많은 도전이 되었다.

1966년부터 10년간 독일로 파견된 11,057명의 간호사가 매년 한국으로 송금한 1천만 마르크 이상의 외화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963년 12월 21일 123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역만리 독일로 광부가 되어 떠났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로 산업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며 '한강의 기적'의 싹이 울텄습니다.

내가 라인강의 기적을 보여준 독일, 광산에서 병원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한강의 기적을 꿈꾸었고 서울의 희망을 키워왔었다. 꿈과 희망의 열매를 한 줌도 남김없이 조국으로 보내면 네가 보내준 기다리던 그 소식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공장 굴뚝에는 밤낮없이 연기가 난다고...

 

- 샌프란시스코 한국문인협회 회장 이성재 박사, 파독광부 백서 중-

 

"청춘, 독일 아리랑이 되어" 라는 단편 영화 상영.

10분도 채 안되는 영상이었지만, 그 감동은 영화 국제시장을 넘어 마음을 아련하게 하였다.

 

 

병원생활, 희망의 밑거름.

"Korea Angel" 한국의 천사들로 불리며 독일인의 신망을 쌓은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였습니다. 하얀 간호복을 입은 꽃다운 그녀들의 손때 묻은 추억을 담았습니다.

 

 

독일 생활 당시 증거가 될만한 기증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것은.. 파업에 대한 내용이다.

 

1960년대, 한국에서는... 인권에 대한 개념 조차도... 부족했던 그 시기...

파독 광부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을 했다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그저 봉사만 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줄 계약서도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다라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마도... "희생"과 "헌신"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내면되어 있는 선입견이 깨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내용이... 포스팅을 굳게 결심한 계기였다.

 

한국은 1960년대에 비해 훨씬 발전하였다.

그 당시 국민소득 76달러, 현재는 3만달러를 기대하고 있으며,

최빈국 중에 하나 였지만, 다른 나라를 원조할만큼 준 선진국으로 경제 성장을 하였고,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 고학력화 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아프다.

 

최근 중공업 등 경기 악화로 인해...

오늘은 매번 상승세였던 최저임금 조차 하락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청년실업 문제는 갈수록 고조화되가고 있고,

한국 특유의 학력주의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

온갖 문제들이 한국의 미래를 희미하게 한다..

 

흠..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외화 벌이로 인해,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듯..

현재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희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고,

우리의 젊은 세대는 더이상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기피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만큼, 특정 직무에 대한 구인난도 높은 것이 반증할 것이다.

 

직업교육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여전히 먹먹하다.

 

1960년대의 그들의 청춘들...

많은 희생을 하면서도... 찾으려고 했던 그들의 권리...

 

그리고 2016년... 우리의 청춘들....

 

나는 어떤 연구를 해야 할까.....

 

 

독일 최대 주간지 Spiegel_ 간호사 파독을 중지하라는 광고문을 냈단다.

한국 간호사의 30%가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어 한국은 도시에서만 26%의 간호사가 부족한 실정으로 독일가 한국인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제 3세계 국가의 의료 전문인력 유출이 최악임을 시사하며, 한국 간호사 파독을 중지해야 한다는 언론 기사이다.

 

 

 

의도한 것이겠지...

현재로부터 과거로 가는 출입구와....

 

파독 광부 신병윤님의 말과 같이 "지하, 1000미터 아래서 배웠다. 끝나지 않는 어둠은 없다는 것을"을 상징하는 듯한,

출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나는 어떤 것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까...

 

다시금... 내 마음 안쪽에 뭔가가 꿈틀거리는.... 시간이었다.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독일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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