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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발걸음 닿은 곳

충남대학교 구두 수선(대전 유성구 궁동)

by 밝은생각쟁이 201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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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망가져서 밑창을 보강하려고 수선집을 찾았는데, 딱히 궁동에는 수선할만한 곳이 없었다.

5년 전 학교 다닐 때 계시던 수선집 아저씨, 아직도 계실까? 라는 의문에 찾게된 공대1호관 수선집.

 

아.. 여전히 지키고 계셨다...

 

 

거의 못 쓰는 신발을 가져다 드렸는데 새신발을 만들어 주심..

정말 감사감사 ㅜ

 

더운 날도 선풍기도 없이 모자에 땀이 차가며 좁은 구둣방을 지키고 계시는 모습이 참 짠했다.

30년 가까이 이곳을 지키고 계신 아저씨는 구두 수선 하시는 것 이상으로 학교의 상징이기도 하시다.

 

 

영업 시간은 아침 10시에 나와서 학기 중에는 저녁까지, 계절학기 때는 3시,방학에는 1시에 닫는다고 하신다.

 

충남대학교 내에 있으나 꼭 학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고,

유성쪽에는 딱히 구둣방이 없어서 외부인도 이용해도 좋을 듯 하다.

충남대 주차 요금은 30분은 무료, 10분 초과 당 200원이 붙는다. (주말 : 1시간 무료, 10시간 초과 당 1000원) -2013.06 기준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손님이 없어서 안나오기도 하신다고 하니 미리 전화를 드리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하다.

전화 번호 :  010-3455-7456 (문자는 왠지 답이 없으실 듯 ;;; )

 

 

 

 

대전일보 기사 발췌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67552

30년 가까운 세월 지켜온 충남대 구둣방
▲사진=충남대에서 구둣방을 운영 중인 남정환씨

조그마한 단칸방 크기쯤 되는 컨테이너 박스 안. 환하게 빛나는 전등 하나의 불빛 앞에서 거칠고 투박한 손이 쉴새없이 움직인다. 닳아버린 구두 뒤축을 매끈하게 갈고, 밑창을 재단하고, 본드를 붙이고, 다시 그 주위를 매끈하게 정리하고. 바삐 움직이는 손놀림을 따라 구두는 낡음을 벗고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렸다.

구두의 변신을 도와준 사람은 내년이면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구두수선소 주인 남정환(69)씨. 충남대 공대 5호관과 1호관 사잇길, 제1후생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작은 구두 수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충남대에서 구두 수선을 한지 벌써 27-8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64년도, 20대 때 구두 일을 배웠다는 아저씨의 손은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울퉁불퉁했다. 흉하게 변해버린 손이 예전에는 부끄러워 슬그머니 뒤로 감추기도 했었다고.

오랜 시간 충대에 자리잡고 일을 한만큼 캠퍼스의 옛 모습도 아저씨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저기 정문 쪽 정심화회관 알지요? 예전에는 허허벌판이었어요. 산학연도 허허벌판이었고." 학생운동이 한창 일어나던 7-80년대 이야기도 꺼내셨다. 한창 교내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날 때는 데모로 인한 수류탄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수류탄의 매운 연기가 아저씨가 일하시는 장소에도 퍼졌는데 눈이 너무 매워 잘 뜰 수조차도 없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찾아와 아저씨의 상황을 보고는 치약을 인중에 바르면 괜찮다는 비책(?)을 알려주었는데 정말이지 수류탄 냄새가 나지 않고 효과를 봤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세월의 길이만큼 이곳을 방문한 학생들도 상당하다. 꼭 신발을 수선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개강 방송으로 구둣방 아저씨의 목소리를 내보내고 싶다며 한 학생이 요청을 해왔다. "뭘 말할까 하다가 영국의 처칠 수상 있잖아요. 그 사람의 제일 짧은 연설이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라는 건데 그걸 말했어요. 그러고나서 한번은 출근을 하는데 교내 방송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더라고."

3-4년 전 쯤에는 한 학생이 여름즈음에 자신을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갔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음료수 한통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아저씨 사진 찍은 걸로 상탔는데 음료수 같이 나눠 먹자고 말하대요. 무슨 상 탔는지는 말 안했는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 사진이 금상을 수상했다'고 말해서 알았죠." 금상을 탔다는 그 사진은 아저씨의 작업 공간 한쪽에 걸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저씨의 작업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두꺼운 구두를 박을 때 쓴다는 미싱과 여러 색상의 실들. 통에 꽂혀있는 가위. 모두 손때가 묻어있는 아저씨의 작업 도구들이다. 가장 오래된 도구가 뭔지 묻자 송곳과 망치라며 무언가를 꺼내신다. 꿰맬 때 사용한다는 나무 송곳은 20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반질반질하고 손때 묻은 나무 송곳에서 오랜 연륜과 장인의 분위기가 절로 풍겨나왔다. 구두 굽을 고칠 때 사용하는 칼을 가는 숫돌에는 수없이 많은 칼들이 갈리고, 닳아 없어지기를 반복하며 거쳐갔다. 아저씨의 친구이자 동료인 라디오는 옆에서 쉬지않고 이런저런 소식들을 이야기한다.

작업 공간 옆쪽 벽면에는 우산들이 가득했다. 구두 수선 집에 있는 수많은 우산이 의아했다. 우산의 출처에 대해 묻자 아저씨는 가게에 학생들이 버리고 간 우산들을 어떤 가게 사장님이 다 모아 가져다 주셨다고 입을 여신다. 부서지고, 고장난 우산들은 아저씨의 손을 거쳐 멀쩡한 우산으로 고쳐졌다. 이렇게 고쳐진 우산들은 가게 한 쪽에 있다가 비오는 날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는 사람들에게 건네진다. 아저씨의 인심이 절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3-4개씩 빌려가는 사람도 있고, 빌려간 뒤에 가져오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가게 안에는 우산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저씨의 학생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게 밖에 있는 의자에는 올려져 있는 구두약과 구둣솔은 필요한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저씨가 놓아둔 것이다.

가끔은 학생들의 구두를 그냥 닦아주기도 한다는 아저씨지만 요즘 학생들에게 아쉬움도 있다. "담배 냄새를 참 싫어하는데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는 아이들이 많아요. 어제 같은 경우는 밥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한쪽 손에 담배를 든 학생이 문을 열더니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학생들에게 '네 녀석에게 빌려주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는 아저씨의 이야기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래도 학생들이 수선된 구두를 받고 기뻐하면 보람을 느낀다는 주인 아저씨다. 시험기간인 요즘은 구두 수선을 하러 오는 학생들이 드물다. "방학 때는 한명도 안 오는 날도 있어요" 일거리가 별로 없다고 하셨지만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에는 5켤레의 구두가 수선을 기다리고 있어 정신 없이 바쁘셨다. 밑창을 다듬고, 닳아버린 부분만큼 새로운 밑창을 재단해 붙이고, 주변을 갈아 매끈하게 만든 뒤 다시 한번 전체 밑창을 재단해 잘라 붙였다. 이야기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그 작업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야기를 끝낼 즈음 한 여학생이 친구와 함께 구두를 들고 찾아왔다. 저 신발은 아저씨의 손을 거쳐 새로운 옷을 입고 주인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고, 캠퍼스며 여러 곳을 주인과 함께 돌아다닐거다. 그리고 또 낡아지면 다시 아저씨를 찾아와 새 옷을 입겠지. 그러면서 주인에게 가장 편하고 소중한 구두가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나도 간만에 신발장에서 잠자고 있는 구두들을 들고 다시 찾아가봐야겠다.

도영혜 시민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사진=구둣방 모습. 구두, 가장 오래된 나무 송곳, 학생이 찍은 아저씨의 사진, 비오는 날 빌려준다는 우산들이 모두 구둣방 안에 모여있다.

 

오마이뉴스 발췌 :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80421145810137

 

21년차 베테랑 구두 할아버지께 들이댄 사연

오마이뉴스 | 입력 2008.04.21 14:58 | 수정 2008.04.22 09:08

 

[[오마이뉴스 전솔희 기자]

"5월 1일이면 21주년이 돼요, 86년 5월 1일에 왔으니까. 세월 많이 갔어요."

앗, 나의 실수! 겁 없이 들이댔다 질겁했다. 1986년에 태어난 나. 1986년부터 학교에 계시던 구두수선 집 할아버지께 거침없이 들이댄 사연. 원래 의도와 자꾸 빗나가는 아슬아슬한 단박 인터뷰.


때는 어스름한 저녁 7시. 문을 여는 시각부터 닫는 때까지 여자(?) 잘 날 없는 곳. 우리학교(충남대) 안에 위치한 구두수선집을 찾았다. 구두 굽이 닳을 때만 찾아갔지만 오늘은 다르다. 2평도 채 안 되는 공간. 길 잃은 구두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분을 만나러 왔다. 바로 학교의 숨은 명물. 올해 64살인 구두수선집 남정환 할아버지다.

일을 거의 마무리 짓는 할아버지께 조심스럽지만 다부진 첫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일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없는 게 없다구!작은 공간이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이 다 있다.

ⓒ 전솔희

할아버지의 대답에 야무진 학생기자는 꼬리를 내렸다. 1986년 5월 1일에 와서 올 5월이면 학교에 온지 21주년이 된다. 이런, 86년이면 내가 태어난 해잖아.

21년 전에 우리학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학교의 모습을 물어봤다.

"80년대에는 데모가 하도 많아서 바람 불면 최루탄 연기가 여기까지 날아와. 얼마나 매운지 울면서 일하고, 일찌감치 집에 갔죠. 매워서 있지를 못해요. 어떤 날 학생한테 물어봤더니 눈 밑에 치약을 바르래요. 허허, 그랬는데 진짜 덜 맵더군."



▲ 장인의 손길!"일하시는 모습 자연스럽게 좀 찍을게요"라는 말에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예리한 눈빛으로 수선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 전솔희

웬걸, 지금 학교에는 벚꽃 잎이 날리는데 20년 전에는 수류탄 연기가 날렸다니. 새삼 구두수선 집이 세월과 더불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21년간 한 자리를 지켰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을 제외하곤 항상 그 곳에 있었다. 부러진 구두 굽, 고장난 우산이나 가방을 맡겨만 두면 요술처럼 바꿔놓는다.

할아버지는 구두 고치러 오는 학생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신다. 구두를 고치는 '뚝딱' 소리와 함께 이야기꽃도 점점 커진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특별히 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요새는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하죠. 말동무가 없으니까 라디오는 계속 듣고, 학생들한테 바라는 점? 내가? 허허, 그런 건 없어요."

나는 자꾸 땀이 났다. 인생 선배님인데 그래도 해 줄 말씀이 없냐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별 다른 건 없다고 했다. 자꾸 조르자 마지못해 하신 말은 이렇다.

"밥은 꼭 챙겨 먹으세요."




할아버지는 구두를 고쳐준 뒤에 '고마워요'라고 먼저 인사를 한다. 단박 인터뷰를 마치고 잽싸게 인사를 하려고 하자 여지없이 먼저 '고마워요'라고 하신다. 이번에도 내가 졌다.




우리학교 안에는 구두 할아버지 같은 숨은 '훈남훈녀'들이 많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사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가끔은 곳곳에 계시는 숨은 명물들과 거침없는 인터뷰를 시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궁동 220 충남대학교 구두방 (공대1호관에서 1학생회관 올라가는 길목, 파란 지붕 컨테이너)

연락처 : 010-3455-7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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